에니악의 첫걸음: 컴퓨팅 파워의 해당 전환점
인류의 연산 능력이 '빛의 속도'를 얻다
1946년 2월 15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어두운 실험실에서 거대한 스위치가 올려졌습니다. 18,000여 개의 진공관이 일제히 빛을 발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산 장치인 에니악(ENIAC)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계의 탄생을 넘어, 인류가 아날로그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디지털의 시대로 진입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에니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의 탄도 계산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당시 수백 명의 인간 '계산원(Computers)'들이 수개월에 걸쳐 수행하던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단 30초 만에 해결해 버리는 이 기계의 등장은 전 세계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1. 30톤의 거인, 진공관으로 박동하다
에니악은 현대의 반도체 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투박한 덩치 안에는 '전자식 연산'이라는 혁신적인 원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 📏 압도적 규모: 총 무게 30톤, 가로 30m에 달하며 방 하나를 가득 채운 크기.
- 💡 진공관의 힘: 17,468개의 진공관을 통해 기계식 계산기보다 1,000배 빠른 속도 구현.
- ⚡ 엄청난 전력: 가동 시 150kW를 소모하여 인근 마을의 전등이 깜빡였다는 일화.
2. 전선을 꽂아 프로그래밍하다
에니악의 진정한 혁신은 '범용성'에 있었습니다. 이전의 기계들이 한 가지 계산만 수행했다면, 에니악은 전선을 다시 연결함으로써 탄도 계산부터 기상 예측까지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있었습니다.
🔌 물리적 코딩의 시대
키보드 대신 수천 개의 플러그를 직접 꽂아야 했던 초기 프로그래밍. 이 고된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며 현대 소프트웨어 공학의 기틀을 닦은 것은 6명의 여성 프로그래머들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왜 현대의 2진법이 아닌 10진법을 사용했나요?
A. 당시 기술자들은 기계식 계산기의 작동 방식을 전자식으로 그대로 옮기려 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익숙한 10진법 체계를 택했습니다.
Q. 에니악은 수소폭탄 개발에도 쓰였나요?
A. 네, 전쟁 종료 후 에니악의 가장 중요한 첫 임무 중 하나는 수소폭탄 개발을 위한 복잡한 에너지 연산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디지털 문명의 영원한 출발점
에니악은 탄생 10년 만에 퇴역했지만, 인류에게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초고속 컴퓨팅 환경은 에니악이 내디뎠던 그 투박하고 거대한 첫걸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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