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과 애니악 시대: 컴퓨터의 태동기

 


"영혼을 설계한 수학자와 육체를 만든 공학자들." 1940년대는 앨런 튜링의 추상적인 '논리'와 에니악(ENIAC)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만나 인류가 비로소 정보의 시대로 진입한 역사적 변곡점입니다.

 

오늘날 우리 손안의 스마트폰은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조상을 찾아가면 건물 한 층을 다 차지하던 거대 기계와 종이 위에 수학 기호를 적어 내려가던 한 천재를 만나게 됩니다. 튜링의 지성에니악의 연산력이 폭발했던 컴퓨터의 태동기, 그 뜨거웠던 현장을 재구성해 봅니다. 🧠⚡

 


1. 앨런 튜링: 보이지 않는 설계도를 그리다

컴퓨터가 전기로 움직이기 훨씬 이전인 1936년, 앨런 튜링은 이미 '보편적 계산 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컴퓨터의 영혼을 설계했습니다.

⚙️ 소프트웨어 개념의 탄생

튜링은 "기계의 부품을 바꾸지 않아도, 입력되는 명령(알고리즘)만 바꾸면 어떤 계산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앱의 시초입니다.

 


2. 에니악(ENIAC): 30톤의 거인이 눈을 뜨다

튜링의 아이디어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 닿았을 때,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는 인류 최초의 범용 디지털 컴퓨터인 에니악이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 거대한 규모: 18,000여 개의 진공관과 70,000여 개의 저항기로 이루어진 에니악은 무게가 30톤에 달했으며, 가동될 때마다 필라델피아 전체의 전등이 깜빡일 정도의 전력을 소모했습니다.
  • 물리적 프로그래밍: 당시에는 코딩 창이 없었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은 수천 개의 전선을 직접 손으로 꽂고 뽑으며 논리 회로를 수동으로 연결해야 했습니다.

 


3. 전쟁이 가속화한 디지털 진화

이 태동기를 이끈 에너지는 역설적으로 '전쟁'이었습니다.

영국의 튜링은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봄브(The Bombe)''콜로서스(Colossus)'를 만들었고, 미국의 에니악은 대포의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인류를 파괴하기 위해 만든 기계들이 결국 인류의 새로운 문명적 도구가 된 것입니다.

 


4. 결론: 태동기가 남긴 유산

튜링의 논리와 에니악의 기계적 구현은 훗날 '폰 노이만 구조'로 통합되며 현대 컴퓨터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80여 년 전의 이 뜨거웠던 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이나 인터넷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상상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그들의 기계는 우리의 지능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태동기 상식 FAQ

Q. 에니악이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가요?

👉 오랜 기간 그렇게 알려졌지만, 후에 영국의 '콜로서스'나 독일의 'Z3' 등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기계들이 재평가받았습니다. 다만 '범용성'과 '프로그래밍 가능성' 면에서 에니악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Q. 앨런 튜링과 에니악 제작진이 서로 만난 적이 있나요?

👉 튜링은 전쟁 중 미국을 방문하여 벨 연구소 등에서 연구자들과 교류했습니다. 직접적인 공동 제작은 아니었지만, 그가 전파한 '보편적 기계'의 논리는 에니악 개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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