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튜링과 ENIAC, 컴퓨터 과학을 세운 두 거장의 교차점

컴퓨터 과학의 뿌리는 단 한 사람이나 하나의 발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앨런 튜링의 이론과 ENIAC의 구현은 컴퓨터 시대의 두 기둥이 되었으며,
서로 다른 길에서 출발했지만 하나의 역사 속에서 만나 오늘날 정보 사회를 탄생시켰습니다.

한 사람과 한 기계가 만든 컴퓨터 과학의 기초는 무엇이었을까?

앨런 튜링은 컴퓨터가 만들어지기 전,
머릿속에서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상상한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습니다.

반면 ENIAC은 전쟁과 실용의 압박 속에서 탄생한
현실 세계의 첫 번째 범용 전자식 컴퓨터입니다.

이론과 현실, 철학과 기술, 추상과 구현이 맞닿았을 때
현대 컴퓨터 과학이 탄생했습니다.

1936년, 앨런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에 대한 논문에서
모든 계산을 단계별 명령으로 나누어 수행하는
튜링 머신(Turing Machine)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 이론은 "컴퓨터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수학적 정의를 내린 것이며,
이후 알고리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론적 기초가 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암호 해독용 컴퓨터 ‘봄브’를 개발하며
이론을 실제 전쟁 기술로 전환하는 능력도 입증했습니다.

1946년, 미국에서 완성된 ENIAC은
진공관 18,000개, 무게 30톤, 전력 150kW를 소모한
세계 최초의 범용 전자식 컴퓨터입니다.

존 모클리와 프레스퍼 에커트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전쟁 중 탄도 계산을 빠르게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전자계산기의 시대를 연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NIAC은 처음에는 하드웨어 재배선 방식으로 프로그래밍되었으나,
**폰 노이만의 ‘스토어드 프로그램 구조’**를 채택하며
현대 컴퓨터 구조의 모델로 자리잡습니다.

튜링은 머릿속에서 컴퓨터의 가능성을 증명했고,
ENIAC은 기술자들이 손으로 그 가능성을 실현했습니다.

이 둘이 만나면서 컴퓨터 과학은 비로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추상과 현실이 통합된 학문이 되었습니다.

ENIAC 개발자들은 공식적으로 튜링의 이론을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폰 노이만은 튜링의 제자인 동시에 협력자였고,
튜링 역시 초기 컴퓨터 개발의 현실적 한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철학과 기술은
EDVAC, UNIVAC, 그리고 현대 컴퓨터 아키텍처로 이어지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 시스템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앨런 튜링의 유산은
AI, 머신러닝, 알고리즘, 컴퓨터 윤리 등
이론과 개념 중심의 지식 체계로 확장되었고,

ENIAC의 유산은
프로세서, 메모리, 입출력 구조, 병렬 처리 등
물리적 컴퓨팅 시스템의 발전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 둘은 분명히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해 세계를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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